역사(한단고기)

신라 석류 해류(海榴)의 본고장 울산.

松隱 유수(종). 2007. 5. 16. 07:49

<석류(石榴; pomegranate)/Punica granatum)>

 

(사진) 붉은열매가 탐스럽게 달린 석류나무.

 

(사진) 붉은꽃이 아름다움게 핀 석류나무.

 

석류나무는 쌍떡잎식물 도금양목 석류나무과 낙엽소교목으로
이란, 아프가니스탄, 히말라야가 원산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옛날 지나(China)에서는

신라에 자생하는 석류를 해류(海榴)로 분류하여

인도의 석류(石榴)와 신라 해류(海榴)로 구분하여 좋아했다.

 

석류나무는 관상용 또는 약용으로 인가 부근에 심는다.
높이는 5∼7m이고,
작은 가지는 횡단면이 사각형이고 털이 없으며 짧은 가지 끝이 가시로 변한다.
잎은 마주나고 길이 2∼8cm의 긴 타원 모양 또는 긴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이며
양끝이 좁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며 털이 없고 잎자루가 짧다.

꽃은 양성화이고 5∼6월에 붉은 색으로 피며 가지 끝에 1∼5개씩 달린다.
꽃받침은 통 모양이고 6개로 갈라진다.
꽃잎은 6개이고 기왓장처럼 포개진다.
수술은 많고 암술은 1개이다.
씨방은 꽃받침 속에 묻혀 있으며 2층으로 구성되고,
위층에 5∼7실, 아래층에 3실이 있다.

열매는 둥글고 지름이 6∼8cm이며 끝에 꽃받침조각이 붙어 있고
9∼10월에 갈색이 도는 노란 색 또는 붉은 색으로 익는다.
열매의 안쪽은 여러 개의 방으로 나뉘고 각 방에는 소낭이 들어 있는데,
소낭은 즙이 많은 붉은빛의 과육이 종자를 둘러싼 모양이다.

종자는 먹을 수 있다.
민간에서 열매 껍질을 석류피(石榴皮)라는 약재로 쓰는데,
설사·이질에 효과가 있고 구충제로도 쓰인다.

고대조선 단군조선 시대부터 석류가 여성호르몬과 관계 있음을 표현하였다.

 

석류열매 안에는 많은 종자가 들어 있어 다산을 상징한다.
혼례복인 활옷이나 원삼에 포도·석류·동자 문양이 많은데,
열매를 많이 맺는 포도·석류처럼 아들을 많이 낳으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식물성 여성호르몬 함량이 많다는 것이 최근에 밝혀져
민간요법의 "다산설(多産說)"이 더무니 없는 말은 아님이 알게 되었다.

 

(사진) 식물성 여성호로몬이 풍부한 세콤달콤 석류알.

 

조선조 세종(1418-1450)때,

명신 강희안(姜希顔)이 쓴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
"<격물촐화(格物叢話:지나식물백과사전)>에 이르되,

류화(榴花)가 본디 안석국(安石國)에서 들어왔기 때문에

이름을 안석류(安石榴)라 하고,
또 해외(海外) 신라국(新羅國)에서 온 것을

해류(海榴)라고 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격물총화> 기록에 의하면,

지나(China)는 석류를

'안석국(인도)''해동국(신라)'

두 곳에서 수입해 가꾼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라비아 또는 인도 원산의 석류나무가

지나(China)를 거치지 않고
어떻게 한반도 남쪽 신라로 먼저 들어와

신라의 석류나무 '해류(海榴)'가 되었을까?

이들 사실들에서 우리는

고대 인도와 <한민족>의 해상교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있다.

 

해상교류 흔적은 석류나무 신라 직접류입 뿐만 아니라,

 <백제 22담로>로 한반도 서남해의 <해양백제대제국> 경영설, 

<대륙신라>의 지나(중국) 산동성 <투후국> 존재설,

<신라> 김알지와 

<가라> 김수로의

<대륙신라(투후국)>에서 이동 설(탄생설화),

김수로왕의 황후 '허 황옥'의 바닷길 김해 류입설,

이들 역사는 전설(傳說)이 아니고 사실(實史)이란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인도 아유다국 공주 '허 황옥'은

가라국 김수로 왕에게 시집온 전 후,
본국에서 좋아하던 이 나라에 없는 진기한 나무들도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로 김해의 "차나무", 울산의 "석류나무" 등등의
몇 종류의 나무들이 전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삼국유사>에서도 <석류>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삼국유사> 피은(避隱) 제8(第八), 낭지승운(朗智乘雲) 보현수(普賢樹) 조에서,
"삽량주 아곡현 영취산(울산 문수산)에 괴이한 스님이 살고 있었다......중략.....
스님은 일지기 구름을 타고 지나(중원) 청량산으로 가서

대중 속에서 강의를 듣고 조금 후에 돌아오곤 했다....중략....
어느날, 그 절의 주승이
다른 절에서 온 스님은

자신이 사는 곳의 이름난 꽃이나 기이한 나무를 도장에 바치라고 명령했다."
낭지는 이튼날 살고 있던 산중의 기이한 나무 한가지를 꺽어 주승에게 바쳤다.
그 곳 중이 그것을 보고 말했다.
"이 나무는 범명(梵名)이 '달제가(妲提伽)'라 하는데,

이곳에서는 '혁(赫)'이라고 한다.
이 나무는 오직 서천축해동두 영취산에서만 자라고 있는데
이 두 산은 보살이 사는 제10법운지로서

이 나무를 바친사람은 반드시 성자일 것이다.

낭지의 행색을 살핀 중들은 그가 해동 영취산(신라 울산 문수산)에서 온 것을 알고
낭지를 존경하여 명성이 안밖으로 크게 났다.
그 후로 낭지가 기거하는 절을 혁목암(赫木庵)이라 부르게 되었다.
지금 혁목사(赫木寺) 북쪽 산등성이 옛 절터가 그곳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낭지가 바친 이 진기한 나무는 신라 석류나무 <신라 해류>인 것이다.
석류나무는 꽃도 붉고, 열매도 붉고, 나무질도 붉으니,
혁목(赫木)이라 할 만하지 않는가?

노 거수의 석류나무(海榴;赫木)가 울산지방에 많았던 의문이 풀린 것이다.

 

울산공업단지 건설 당시 처음 울산 온 필자는
집집마다 노 거수 석류나무가 있는것을 보고 참 신기하게 느꼈다.
그 후 석류나무의 매력에 빠졌지만 몇 년을 정신없이 지나고 보니
개발과 공해에 밀려 그 아름답던 석류가 하나씩 사라져 가고 없어져 버렸다

급한 마음에서 죽어 없어지는 석류나무를 살릴목적으로

노 거수 석류 수그루를 공업단지에서 떨어진 밭에 옮겨 심었으나 살리지 못하고 죽었다.
공해 때문인가? 아니면 정성이 다하지 못한 탓일까?
정말 안타까운 일이였다.

지금 울산지방에서 노 거수 석류나무를 찾아 볼 수 없다.
'달제가(妲提伽)', '혁목(赫木)'을 잘 가꾸어

후손들에게 물려 주지 못한 것은 우리새대들의 책임이 크다.

 

<석류나무의 상세설명>

도금양목 석류과의 낙엽소교목.

높이 3∼5m. 관상용의 한 변종인 애기석류나무는 높이 20∼30㎝인 관목이다.

일반적으로 분지(分枝)가 많고, 잎은 마주나며 잎자루가 짧다.

꽃에는 양성화와 자성(雌性)이 퇴화된 수꽃이 있다.

꽃받침은 통모양이고 다육질이며, 5∼7개로 갈라진다.

꽃잎은 6장이고 주홍색을 기본으로 하며

그 밖에 흰색, 붉은색에 흰색의 어루러기진 것, 등황색 등이 있다.

열매는 꽃턱이 발달한 것으로 거의 공모양이고, 끝에 꽃받침열편이 있다.

열매껍질은 두껍고 속에는 얇은 격막으로 칸막이가 된 6개의 자실(子室)이 있으며,

다수의 종자가 격막을 따라 배열되어 있다.

숙과(熟果)의 열매껍질은 황백색 또는 자홍색이며,

불규칙하게 벌어지고 속에는 즙이 많은 흰색, 담홍색 또는 분홍색의 종자가 들어 있다.

종자는 새콤달콤한 특수한 풍미가 있어 생식하고, 청량음료의 재료로도 사용된다.

 

원산지는 이란이며,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북서부)에는 종자가 없는 열매가 맺히는 품종이 있다.

미국에서는 플로리다, 조지아, 루이지애나 지방에서 생식용, 주스용으로 재배된다.

꽃이 아름답고 열매가 익어서 터지는 모양도 아름답기 때문에 관상용으로도 재배한다.

 

한반도에는 신라 전에 지나(China)보다 먼져 배양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추위에 약하여 중부지방에서는 경제적 생장이 안되며,

전라북도, 경상북도 이하의 지방에서만 노지(露地) 월동이 가능하다.

토심이 깊고 배수가 잘 되며 비옥한 양지에서 잘 자라고 결실이 잘 된다.

꺾꽂이, 휘묻이, 포기나누기 등으로 번식시킨다.

줄기, 가지, 뿌리의 껍질은 촌충구제약으로 사용되고,

열매껍질은 만성세균성설사, 혈변, 탈항, 회충에 의한 복통, 요충병 등에 효력이 있어

치료용으로도 쓰인다.

 

(사진) 아기 예수 님이 가지고 있는 생명의 열매 석류.

 

석류는 안에 많은 종자가 들어 있기 때문에 다산의 상징이 된다.

혼례복인 활옷이나 원삼의 문양에는 포도문양과 석류문양, 동자문양이 많이 보이는데,

이것은 포도, 석류가 열매를 많이 맺는 것처럼 자손을 많이 낳고

특히 아들을 많이 낳으라는 기복적 뜻이 담긴 것이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혼례복뿐 아니라 기복적 의미가 강한 민화의 소재로도 자주 등장한다.

이집트, 페니키아, 고대로마 등에서는 신성한 식물로 여겨졌으며,

페르시아에서는 과일이 왕홀(王笏)의 두부(頭部)를 장식했으며,

그리스의 로도스섬에서는 꽃이 왕실 문장의 일부로 사용되어

권위의 상징이 되었다.

그 배경에는 꽃받침조각의 모양을 왕관으로 보았다는 점과 다산의 상징으로 생각했다는 점 등이 있다.

초기 그리스도교 미술에서는 에덴동산의 생명의 나무로서 묘사되고 있기도 하다.

 

(사진) 지나(China) 화천궁 앞의 1,300년 된 석류나무.

 

 

석류 원산지가 아닌 지나(중원)에서도

1,300년전 심은 석류나무가 있거늘, 

신라 석류(해류) 원산지 한반도

자생지 하나 못 남긴 것이 후손들에게 뿌끄럽다.

 

우리 <배달민족>이,

역사 속,

신라 석류나무 <해류(海榴)> 하나 지키지 못한

부끄러운 민족이란 말인가?

 

 

<미안합니다><고맙습니다><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