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론(차와 다완)

조선사발(高麗茶碗) <개구리알>문양.

松隱 유수(종). 2008. 8. 18. 05:08

조선사발 굽의 <가이라기>

그 <가이라기>가 무엇인가?

 

조선사발의 특징적 아름다움은 <빙렬>과 <가이라기> 다.

이들 아름다움 때문에 '미치도록 조선사발을 좋아한 원인'이 되었다.

 

우주생성의 원리와 인생역정의 역사를

도자 <빙열>과 <가이라기>에서 찾고 있다면?

모두들 웃으리라~.

 

불의 화학반응과 흙의 재탄생으로 빗어낸 의도적 우연,

<빙렬>과 <가이라기>를 볼때마다 감탄을 금하지 못하고

쓰다듬고 또 쓰다듬다

이불 속까지 않고 자는 그 심정을~~.

 

일본인들이 말하는 <가이라기> 라는 말의 뜻은 모른다.

다만 발음으로 <가이라기>라고 표현할 뿐이다.

그렇다면 <가이라기>는 무슨 뜻 일까?

 

조선의 도공이 여름 밤 새도록 불을 지필 때,

'불의 신'에게 부르던 간절한 노래.

그 노래가 들녁에서 들려오는 '개구리의 합창' 이었으리라.

간절한 맘을 달래며 "개구리알"같은

<가이라기>가 탄생하도록 빌었으리라

 

조선도공들은 개구리알처럼 생긴 굽부분의 유약과 불의 조화를

<개구리알> 이라고 불렀다.

그 소리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일본 상인들이

굽 부분의 <개구리알>을

그대로 따라 발음한 <가이라기>로 전해지게 된 것이다.

 

<개구리알>이 <가이라기>로 변화된 주장이

필자 개인의 주창만은 결코 아니다.

매화피? 유방울? 유약흘림? 유약피? 등등의 표현은

너무 고급스럽다.

언제부터 젯물유약이라 했던가?

 

가난한 도공들의 소박한 생활환경,

고단한 밤 샘을,

잉태의 꿈을 꾸며 산고의 아품을 참으며

밤이 새도록 울고있는 개구리들의 삶을 닮았으리라.

그 <가이라기>는 <개구리알>로 부터 탄생한 것이다.

개구리의 울부짖는 산고로 부터

<개구리알> 문양 탄생이 이루워 진 것이다.

 

<일본 국보가 된 조선사발>

아래 사진은 일본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조선사발"이다.

일본 茶人들 사이에서는 '신이 만든 기물(神物)'로 여기고 있다.

 

고려의 천목다완(金花烏盞)과 청자다완(秘色小玖)이 퇴락하자

청자소성기법으로 분청사기가 나타나

서민들의 사발(밥그릇), 대접(국그릇), 종지(잔)로 상용되고 있었다.

 

당시 대나무, 나무그릇 만 사용하던 미개한 일본인들은

도자기 그릇을 보물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풍신수길은 막후 장졸들에게

"조선에는 집집마다 보물이 수북이 쌓여 있다."

"원하는데로 탈취해도 좋다"고 명령함으로서

난폭하고 잔인한 "임진왜란"이 시작되었다.

 

왜놈 무사들은 양민을 무차별 살육하며

민가를 덮쳐 부엌의 밥그릇 국그릇을 보물처럼 탈취해 갔으니.

지금도 왜놈들은 임진왜란을 '다완전쟁(茶碗戰爭)'이라 말하고 있다.

 

다완전쟁(茶椀戰爭)에서

눈 까 뒤집고 찾던 조선막사발(大井戶茶碗)의 생산지가 어디일까?

 

도요지 발굴 확인에 따르면,

(1)경남 하동군 진교면 백연리 1,2,3호 도요지,

(2)경남 진해시 두동 웅천 도요지로 추정하고 있을 뿐.

일대의 수많은 도공들은 바다건너로 끌려가는 고초를 당해야 했고

지금의 세계 최고 도자기국가의 선조가 되었다.

 

(사진) 일본국보가 된 조선밥사밥,대정호사발(大井戶茶碗;16세기);日本國寶.

- 京都,孤蓬庵소장. 銘;喜左衛門.

- 높이;8.9㎝, 입지름;15.4㎝, 굽지름;5.5㎝, 굽높이;1.4㎝, 무게;370g.

 

(사진) 일본국보가 된 조선밥사밥, 대정호사발(大井戶茶碗;16세기);日本國寶.

- 京都,孤蓬庵소장 銘;喜左衛門의 굽.

- 굽지름;5.5㎝, 굽높이;1.4㎝.

 

 

 

<도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가 가장 아끼던 조선사발>

일본의 천하 3대 다완으로 불리는 筒井筒(쓰쓰이쓰쓰) 조선사발 이야기를 해보자.

筒井筒(쓰쓰이쓰쓰) 이도다완은 비파색을 기본바탕으로 두터운 기벽,

은은한 물레자국,

태산을 짓누른 듯한 중후함,

크고 작은 빙렬과 가이라기의 아름다움 등,

완벽한 명품다완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筒井筒(쓰쓰이쓰쓰)라는 유래는

일본 전국시대 가장 큰 사건 중 하나인 '혼노우지의 변' 이다.

'혼노우지의 변'은 당시 가장 강력한 쇼군이었던

오다노부가나를 아케치미쓰히데가 암살하는 사건을 말한다.

 

당시 筒井筒(쓰쓰이쓰쓰)는 오다노부가나를 죽인 영주의 통치하에 살고 있던

'이도요시히로'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었다.

'이도요시히로'는 당시 야마토고오리야마성의 성주 '쓰쓰이케이'의 부하였다.

 

주군의 원수를 갚으려는 '도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가

그 유명한 '야마사키 전투'에서 승리하며 전국의 패자로 떠오르게 되었다.

도요토미의 승리를 본 '쓰쓰이케이'는 자신의 목숨과 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부하인 '이도요시히로'가 소장하고 있던

'아도다완'을 '도요토미히데요시'에게 헌납하게 된다.

 

자신의 비천한 출신을 다도(茶道)를 통해 극복하려고 했던

도요토미에게는 최고의 선물이었던 셈이다.

 

그 선물로 인해 '쓰쓰이케이'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고

신물(神物)처럼 모시던 그 조선사발의 이름이 이로서

'筒井井戶(쓰쓰이이도)'라고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도요토미는 '쓰쓰이이도'를 천하제일의 찻사발이라고 극찬하며 아꼈다.

그러던 어느날 차를 시중들던 시동이 실수로 '쓰쓰이이도'를 떨어뜨려

다섯조각을 내고 말았다. '

 

'쓰쓰이이도'를 도요토미는 당시 자신의 차도지도자(茶頭)였던

일본의 다성(茶聖) '센리큐(利休)'에게 수리를 맡겼다.

'센리큐'는 그 다완을 이틀에 걸쳐 수리하고,

그 다완의 우주적인 심미감에 사로잡혀

센리큐는 도요토미도 모르게 찻사발에 차 한잔을 마셨다.

그러나 그 같은 사실을 도요토미에게 들켜 엄청난 분노를 사게 됐다.

 

센리큐에게 수리된 '쓰쓰이이도'는 일본말로 다섯조각의 이도라는 뜻으로

'쓰쓰이쓰쓰이도(筒井筒井戶)’라고 이름이 바뀌게 된 것이다.

'쓰쓰이쓰쓰이도' 찻사발은 현재 일본의 보물로 지정되어

가나자와현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진) 도요토미가 아끼던 조선 밥사발, 대정호사발(大井戶茶碗;16세기);日本重要文化財.

- 銘; 筒井筒井戶茶碗.

- 높이;9.8㎝, 입지름;15.4㎝, 굽지름;5.6㎝, 굽높이;1.6㎝, 무게;426g.

 

 

(사진) 도요토미가 아끼던 조선 밥사발, 대정호사발(大井戶茶碗;16세기); 日本重要文化財.

- 銘; 筒井筒井戶茶碗의 굽.

- 굽지름;5.6㎝, 굽높이;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