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曆法)>의 발명 <한겨래문명>.
BC 10,550년 한반도 중부지방에서 <단립벼>재배 화석이 세계 최초로 출토되었다.
BC 6,000년경 재배된 탄화 쌀, 콩, 조, 수수, 기장, 보리 등과
한겨레들 만 즐겨먹는 들께, 참께도 함께 출토됨에 따라,
한반도 중부지방은 <쌀>, <콩> 과 <오곡(五穀)>은
인류최초의 농사문화(農事文化) 시원지(始原地)임이 확인되고 있다.
BC 12,000년 초기신석기 한반도인(한민족)들은
농사문화의 발달에 따라 절기(季節) 변화의 달력(曆法)이 필요했었다.
그래서 하늘의 별을 보고 달을 보고 해를 숭상하는 인류최초 천문학을 기록한 민족이기도 하다.
세계 최초의 달력은 BC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이 만들었다고 가르친다.
서남아시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는 당시 수메르인이 살고 있었다.
고기(桓檀古記)에서 수메르는 12칸국의 하나라고 기록하고 있다.
수메르인은 농작물을 심거나 거두는 일정을 세우기 위해 하늘의 별과 달,
계절의 변화 등을 연구하다가 BC 3,000년경에 달력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한반도 중부지방 한강유역 충북 단양에서 초기신석기시대 <눈금거어진 돌>이 발견되었다.
이 돌의 눈금은 BC 12,000년경 농사에 필요한 절기를 표시한 달력이었던 것이다.
다시말해, 한반도 한강유역 단양에서 농사에 필요한 달력이 돌에 세겨진 <돌 달력>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인류 최초 달력(曆法;Almanac)이 아니 겠는가?
그르므로 <한겨레문명>은 인류 최초로 <달력을 만든 민족>인 것이다.
더불어 동양에서 설날(春節), 정월 초하룻날은 <한겨레문명>의 새해인 것이다.
어릴 때 밚이 부르던 설날 동요에서,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깨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이들 모두 한민족이 달력을 발명한 특수가 아닌가?
더 경이로운 것은 아메리카대륙 인디안들도 <눈금거어진 물건>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물건 역시 농사절기를 표시한 달력(曆法;Almanac)이었던 것이다.
배재대 손성태 교수의 "아메리카 인디안의 한민족 설"에 힘이 실린다.
역시 그들도 <대단군조선>의 피를 받은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사진) 충북 단양 출토 초기신석기시대 <눈금거어진 돌> - 농사절기를 표시한 달력(曆法).
(사진) 아메리카 인디안이 사용한 <눈금거어진 물건> - 농사 절기를 표시한 달력(曆法;Almanac).
<눈금거어진 달력>출토지역
(1) 한반도(돌),
(2) 캄차카(나무),
(3) 맥시코(나무),
(4) 미국동부(나무).
지나의 석학 서량지 교수는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에서 이렇게 써고 있다.
“한족(漢族)이 지나 땅에 들어오기 전, 지금부터 4천년 전에,
지나 중원(中原)의 북부 및 남부를 이미 동이족(苗族)이 점령하여 경영하고 있었다.
한족(漢族;支那族)이 지나에 들어온 뒤에 점점 서로 더불어 접촉하였다.”
그는 또 "은(殷)과 주(周) 이전과 은-주 시대에도 동이의 활동무대가 실로
오늘날의 하남, 강소, 안휘, 호북지방, 산동반도, 하북, 발해 연안, 요동반도, 조선반도의
광대한 지역을 모두 포괄하였는데 <산동반도>가 그 중심지였다."
서량지 교수는 또 이렇게 썼다.
“중국의 책력법(冊曆法)은 동이(東夷)에서 시작되었다.
책력을 만든 사람은 희화자(羲和子)이다.
그의 혈통은 은(殷)-상(商)의 동이족(한민족) 조상이다.
동이가 달력을 만든 사실은 실로 의문의 여지가 없다.”
“역법은 사실 동이가 창시자이며, 소호(小昊) 이전에 이미 발명되었다.”
(~曆法實倉始於東夷 而且小昊 以前便已發明.)
한민족은 환국, 환웅배달, 단군조선, 해모수부여 시대는 물론,
고구려 및 백제/신라/가야,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역서(曆書)는 백성들이 농사와 고기잡이 등의 생업에 잘 종사하도록 하기 위하여
통치자가 천문력(天文曆), 농사력(農事曆), 항해력(航海曆)을 키우기 위해 만들게 된 것이다.
백성들의 일상생활에서 년, 월, 일, 주(週)와 춘분, 추분, 하지, 동지 및 각종 축제일(祝祭日)의 기록이 포함된,
상용력서(常用曆書)의 발간도 통치자(왕)의 중요한 임무의 하나로 여겨졌었다.
고대로 부터 한민족이 특별히 천문관측 기록이 많은 것도 달력과 무관하지 않다.
신라 선덕여왕대 서기 632~647년에 건립된 아름다운 첨성대(瞻星臺)는
지금까지 세계최고 천문대로 남아있다.
고구려시대 평양에서 각석한 천문도(평양星圖) 비석의 탁본을 바탕으로
서기1,395년 조선 태조 4년에 돌에 새긴 천문도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
태조본이 바로 그것이다.
태조본을 세종 15년에 복각한 것으로 추정되는 세종본도 있다.
이 비석이 마모되자 서기 1,687년 숙종 13년에 원형보존을 위해 상태가 좋은 탁본을 바탕으로
이민철(李敏哲, 1669년 현종 10년에 수력식 혼천의 제작)이 새로 숙종본을 복각하였다.
서기 1,770년 영조 46년에는 관상감 안에 흠경각을 지어 이 두 개의 비석을 함께 보존하여 왔다.
서기1,908년에 대한제국의 제실박물관으로 옮겨져 창경궁 명정전에 70년대 초까지 보관되어 왔다.
지금은 두 개의 비석을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 전시하고 있다.
이들 천문도는 한국의 국보인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전천(全天) 천문도의 하나로써
한민족 역사의 대표적인 유산이며 세계적인 보물이다.
(사진) <천상열차분야지도>-고구려 평양성도(平壤星圖)를 기본으로 만든 조선태조 본 기원(세계 보물).
(사진) 신라 선덕여왕 대 서기 632~647년에 건립 <점성대(占星臺)> - 경주시 인왕동 839-1.
(사진) 마야 달력 - 남북 아메리카 인디안들은 단군조선 피가 흐르는 한민족 후예들이다.
(사진) 애짚트의 추수기를 표시한 달력 - 이짚트 파라호의 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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