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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조선의 <평양><압록강>이동 역사.

松隱 유수(종). 2022. 9. 12. 18:15

동북아시아 고대 역사 속에서

<평양(平陽)>과 <압록(鴨錄)>의 이동(遷都)은

동이족(桓檀族)과 하화족(漢族)의 경계(國境)가 달라졌다.

 

고대문헌과 유적 및 유물을 보면

기원전(BC).400년 이전까지는

지나대륙(支那大陸)에서 하화족(西藏族)이 나타나지 않으므로, 

기원전(BC) 12,000년 신석기 시대부터

기원전(BC) 400년 청동기 시대까지

고대조선(환인 칸국+황웅 배달국+단군 조선국) 역사만이

지나(중원)대륙에 존재 할 뿐이다.

 

신석기 청동기 시대 동북아시아 전 지역은

고대조선(칸국+배달국+조선국) 만이 존재했었던 것이다.

화하족(華夏族)은 기원전(BC) 300년 경 철기시대에 와서야

겨우 양자강 상류지역에서 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신시배달국> 환웅천제는 기원전(BC) 8,000년경,

장안(서안) 및 함양 등지에 처음 아사달(서울)을 세웠으나,

그 중심지(首都)가 점차로 산동반도 우이의 <대문구문화>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 문화가 BC. 4,200년경 황하유역 산서성 임분시 양분현

도사(陶寺)유적의 <도사평양>을 형성시킨다. 

 

다시 이들은 황하 북쪽 궁방(弓方) <황하평양>으로 이동하니

<황하문명>이 완성된다.

이 당시 압록(鴨錄)은 청하(靑河) 지류 호타하가 패수(浿水) 였다.

 

여기서 <한민족 한겨레>의 <평양>의 이동'과정을 보면 

1, 기원전 2,400년 경 산서성 임분시 <도사 평양> 

2, 기원전 400년 경 황하 북쪽 弓方 <황하 평양>

3, 기원전 200년 경, 지금의 난하(요수) 동쪽 요동의 <요동 평양>이 있었다.

 

또한 <압록>의 이동도 이러하다.

1, 지금의 호타하(폐수,열수)

2, 지금의 난하(요수)

3,지금의  요하로 밀려 이동 했었다.

 

지금의 한반도 대동강 유역에는 고구려 멸망시까지

<평양>이란 명칭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고려가 망한 당시 평양(안동도호부)은

지금 북경을 흐르는 조하(朝鮮河) 유역 있었다.

 

그 후 500년이 지난 고려시대에도 이 땅을 찾지하고 있었으나,

고려는 <서경>이라 허칭하고 있었다.

 

고려의 <서경>은 조선 말 청일전쟁 그 후 부터

<안동>으로 그 명칭이 바뀌고 있었다.

또한 이 시기부터 '압록강'과 함께 조선의 국경이 형성되고,

<서경>을 <평양>으로  바꿔 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평양>과 <압록강>의 이동으로서

고대조선(칸국+배달국+조선국)의 광대한 국토가

대륙 '지나(중원)'에서 점차로 '한반도'로 밀려 갔던 것이다.

 

https://youtu.be/HBIsW1R_0IY?si=0pcqJpBa9gUOpPm1

 

(사진) 기원전 2,400년경 고대조선 요 임금(壬劍) <도사 평양>,

- 산서성 임분시 양분현 도사(陶寺)유적지  답사장면

 

(사진) 기원전 400년 경 고대조선의 황하의 궁방(弓方) <황하 평양>.

- 지나(중원) 진 나라 통일에 밀려  <도사 평양>에서 <황하 평양>으로 천도. 


한겨래(동이족) 고조선의
한 그룸 '불조선'은
BC.10,000~BC.400년까지

발해만 유역에서 옥기(玉器)시대  <청구문화(홍산문화>를 열었으니,

그 도중 BC.3,500년 경에 이르러 한반도 사람이 놋(靑銅)을 발명하였고,

그 결과물로 신무기 비파형 놋칼(銅劍)이 등장하게 된다. 

이 세력에 의하여 단군(檀君)임금(壬儉)이 새롭게 나타나

연방(聯邦) 단군3조선(三朝鮮)을 건국하게 된다.

 

연방 <단군3조선>은 곧 <맑조선>, <불조선>, <신조선> 및

다른 흉노족(스키타이)이 연합해 형성되었다.

 

<맑조선>은 한반도와 요동에서 새(봉황) 토템을 가진 집단이었고,

<불조선>은 지나(중원)대륙과 요서에서 곰 토템을 가진 집단이었고,

<신조선>은 아무르 유역의 천산천해와 오오츠크(옥저)해 연안,

캄차카반도에서 범 토템을 가진 집단이었다.

여기에 형제족인 늑대(이리) 토템을 가진

훈족(흉노족;스키타이족)과, 당시 소수 부족, 민족 들이 모여들어

단군3조선 건국에 합세하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요녕성 평강지구 나만기 유적' 출토 BC.3,000년경 유물

단군3조선 건국 청동기는

한반도 한겨래 맑족(조이족)이 동이 맥족(곰족), 만주 예족(범족), 북극 흉노족(늑대족)을

통합을 형상화한 놋요대(靑銅腰帶)이다.

 

(사진) BC.3,000년경, 맑조선의 새(봉황)토템족곰,범,늑대 토템족을 품어

단군3조선 연합을 이루는 상징적 기념 유물 <청동요대> (요녕성 평강지구 출토). 

 

당시 <단군3조선>이 건국된 중심지역은

대요수(지금의 난하) 동쪽 대동강(자금의 대릉하) 유역의 <요동평양>이었다.

이곳에 북경 근처로 흐르는 조선하(지금의 朝河)가 있고,

황하 위쪽에 '호타하'는 패수(浿水) 또는 열수(烈水)가 있는데

이곳 '호타하'가 바로 '압록수'이다. 

 

이와같이 '앞록강'도 '평양'과 함께 여러번 동쪽으로 이동하며 바뀐다.

 

 (사진) BC. 400년 전 동이족(朝鮮)의 중신지 <요동 평양시대(하가정 상층 시대)>.

 

BC.400년 경.

단군3조선의 불조선(맥족) 세력이 약화되며 천자의 지위가 흔들리자,

대륙 곳곳의 부족들이 일어나니 이를 이름하여 '오호십육국(五虎十六國)'이라 했다.

 

이들은 한 동안 서로 부딛치고 다투어 이합집산을 이루었다.

그 중 황하 모퉁이에서 농사를 짖고 살던 하족(夏族)의 작은 진 나라가

BC.300년 경 세력을 키워 황하 이남 일부를 통일하게 된다.

 

이 시기 멸망한 연 나라 장수 '진개'가 천자국 조선에 거짓투항하고

조선의 동호지역 일대를 염탐한 후 돌아가 수천명의 무리를 이끌고

황하를 넘어 패수(호타하)유역 동호 1,000리를 점령한다.

이 때까지 황하 북쪽의 <황하평양(平陽)>은 <단군3조선-불조선>의 수도였다.

 

BC.206년 유방(劉邦)이 천자국 조선(불조선)의 힘을 빌어 항우를 물리치고

진 나라를 멸망시키고 한(漢) 나라를 세우니

이 때 비로소 하화족(夏華族)이 동북아시아에서 처음 두각을 나타낸 것이다.

한 나라가 강성해져 요서지방(난하 서쪽지방)에서 <단군3조선-뷸조선> 세력과 서로 다툰다.

 

이 당시 연 나라 사람 '위만'이 상투를 틀고 한복을 입고 조선 사람으로 변장하여

무리 2,000명을 이끌고 <단군3조선-불조선>에 귀부한다.

<단군3조선-불조선>의  "준" 왕(부단군)은 어리석게도 '위만'을 신임하고

변방의 장쇄(城)쌓는 일을 맞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위만은 "한나라 군대가 처들어 온다"고

속여 불조선 도읍을 일시에 점령한다.

부단군 "준" 왕은 한반도 <단군3조선-맑조선>으로 도망가

삼한으로 분열된 한 곳의 왕이 된다.

 

'위만'이 점령한 <단군3조선-불조선>을 이 때부터 '위만조선'이라 한다.

'위만조선'은 막강 한나라 군대와 3대 동안을 벗티고 싸웠으나

'위만'의 손자 대에 와서 나라 내부 분열로 한 나라에게 멸망 당한다.

이 때, 막강 한 나라 군대도 산동반도와 만주지방으로 더 진격하지 못한 이유는,

그 곳에 <단군3조선-맑조선>과 <신조선>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한 나라는 대요수(지금의 난하) 서쪽지역 즉, 요서지방에

낙랑,진번,임둔,현토 4군의 완충지를 설치하고 물러났다.(이상의 기록역사가 허위라고도 한다)

 

당시 송화강 및 아무르 유역의 <단군3조선-신조선>에서는 "해모수"라는 걸출한 호걸이 나타났다.  

그는 <단군3조선-불조선>의 대요수(지금의 난하) 동쪽의 영토 <요동>을 합처 

부여국(북부여)을 건국하고 막강 한 나라 군대와 맞선다.

 

해모수 천자의 7세 후손 추모왕이 이 지역에서 고구려를 건국한다.

당시 한반도에는 후 삼한으로 분열되었다가 백제, 신라, 가야로 3국이 형성됨에 따라

이로서 한민족 4국시대가 시작된다. 

 

그 후 한 나라는 대요수(지금의 난하)를 한번도 넘어오지 못했고,

옛 땅을 되찾으려는 새로운 동이족 세력 <고구려>에 의해 오히려 요서(한사군 지역)을 잃었다.

또한 <고구려>는 한 때 한나라 수도 장안(서안)까지 점령했었다.

 

그 후 지나 중원에서는 새로운 왕조 당 나라가 서고,

힘겹게 겨우 지금의 '만리장성'을 뜬뜬히 쌓아 국경으로 했다.

'만리장성'은 <고구려> 멸망 직전까지 국경을 이루웠지만,

<고구려>는 여러번 '만리장성'을 넘어 당 나라에 차들어 갔었다.

그러나 당 나라는 <고구려>가 망하기 전 까지는 '만리장성' 산해관을

한번도 넘어오지 못했다.

 

아래 지도에서 밝은 초록의 지역이 고려, 조선의 종속영토이다.

옛<압록>이 <대요수> 였음으로

'안시성'과 '요동성' 등 <고구려> 고성들이청과 차례로 있던

<압록>이 대요수(지금의 난하)로서

고려 및 근대조선 시대까지 청과 조선의 국경으로 삼고 있었다.

 

(사진) 우리가 수복해야 할 조선의 고토(古土).

- 1,824년 불란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근거로

래학자 "존 티토"가 그린 2030년 조선(Corea)의 지도.

 

(사진) 한겨레가 수복해야 할 기원전 2,500년경 <회남자> 근거 조선의 고토(古土).

- 북쪽으로 아무르(어!미르: 아! 큰물) 및 오호츠크해(옥저해)의 사하린, 캄차카, 축지반도,

- 서쪽으로 갈석산 태행산맥, 청하 지류 압록수(지금의 호타하),

- 남쪽 산동성 및 회하-장강 하류 강소성, 절강성 대만, 해남 및 남만, 동이 한겨래의 영속지이다. 

 

백두산에서 발원한 지금의 <압록강>

고려, 조선의 국경 <압록>이 아니다.

옛 국경 <압록>,

처음은 지금의 "호타하(패수,열수)"였고,

그 다음은 지금의 "난하(대요수)"였고,

또 그 다음은 지금의 "요하" <압록>이있다.

 

<압록> <평양> 처럼 이동하여 국경변화에 따라 계속 바뀌었다.

 

19새기 한겨래 한민족이 조상대대로 살고있던

만리장성 동쪽 만주(청구)지역을,

처음에는 <대고려국>으로 협조하다가, 

조선인의 1919년  3.1만세운동의 저력에 놀란 

일본제국은 <대고려국>을 폐기시키고

'괴래만주국' 성립을 위해

강압적 단독으로 지금의 "압록강","두만강"으로 <조선>의 경계로 그었으니?

이게 왠 말인가? 오호통제라!!

오호애제라!!

 

한민족의 전통적 영토 청구(만주)자역을 "만주국"으로 편입시킨,

만리장성 동쪽 땅이 일제의 패망과 동시에 '중화민국'에 넘어감으로 해서

한민족의 고토는 지금의 "압록강","두만강"을 잘려 

중공(중국공산당)' 땅으로 불법 거주돠고 있으니.......

<한민족 한겨레>는 이 땅을 반드시 수복해야 할 책임과 임무가 있다.> 

 

 

<미안합니다><고맙습니다><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