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호(宅號) 꽃 노래

2015. 7. 25. 13:34카테고리 없음

태백산 줄기 아래 어느 반촌에서 "택호 꽃노래"가 있었다.

어릴 때 수 없이 들은 택호 꽃노래를 행여 잊을까?

기억을 더듬어 이곳에 기록해 두려 한다.

 

나의 어머님의 택호는 '솝실댁' 이셨고,

솝실댁꽃은 키다리꽃(코스모스)이셨다.

 

큰 대문집 안마당 건넛방에서

마을 대소가의 계집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호롱불에 얼굴 밝히고 노래를 부른다.

청하하고 맑은 노래 소리가 쟁쟁이 귀 고막을 울린다.

 

반가의 규수가 반촌으로 시집을 오면,

태어나고 자란 마을 이름을 따서 '택호'를 짓는다.

창녕에서 시집온 새댁을 "창녕댁"

안동 예안에서 시집온 새댁을 "예안댁"이라 지었다.

 

요사이 흔히 부르는 "oo엄마" 또는 "oo내" 라고 부르면 .

민촌(반촌의 반대) 호칭이라 야단맞는다.

 

새로 시집온 새댁의 택호가 지어지면

그 남편(서방)은 새댁의 택호에 '양반' 字만 붙이면 된다.

즉 "창녕양반", "예안양반"으로 불린다.

 

택호 꽃노래에는 시집온 새댁이 자식을 낳고

그 마을 사회에서 어느 정도 기여도가 높아진 뒤에 지어지게 마련이다.

즉 어미의 택호 꽃노래를 성장기 딸들이 지어 부르게 된다.

 

이 택호 꽃노래는 우연히 지어진 것이 아닌 것 같다.

택호 꽃노래는 마을 대소가 계집아이들이 모여서 지어지지만,

그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행실이 그 속에 담겨 있는 듯하다.

 

그 택호 꽃노래 속에는 우리 어머님들의 서러움과 애환도 담겨 있다.

가만히 들어보면 그 분들의 함축된 인생살이를 알 것 만 같아

정말 재미있다.

 

나는,

나의 어머니 꽃

'키다리꽃(코스모스)'를 가장 좋아한다.

 

 

 

 

사랑앞의 접시꽃은 솔미댁이 꽃이라오,

장독옆의 키다리꽃은 솝실댁이 꽃이라오,

들에 피는 패랭이꽃은 창녕댁이 꽃이라오,

반질뺀질 맨드라미는 외동댁이 꽃이라오,

싸리문옆 봉선화는 하동댁이 꽃이라오,

하얀얼굴 분꽃은 율리댁이 꽃이라오,

우물가의 연꽃은 인동댁이 꽃이라오,

솜씨좋은 채송화는 예안댁이 꽃이라오,

팔방미인 명사꽃은 들성댁이 꽃이라오,

허리굽은 할미꽃은 성주댁이 꽃이라오,

향기없는 목단꽃은 다원댁이 꽃이라오,

외톨백이 상사화는 발란댁이 꽃이라오,

하얀밤의 매밀꽃은 광산댁이 꽃이라오,

개골속의 구절초는 예천댁이 꽃이라오,

술에 담긴 국화꽃은 석계댁이 꽃이라오,

뿌리깊은 민들레는 안동댁이 꽃이라오,

이산저산 도라지꽃은 금단댁이 꽃이라오,

오동통통 감꽃은 안질댁이 꽃이라오.

 

어느 날 "안질양반"이

노래의 마지막 소절인

"오동통통 감꽃은 안질댁이 꽃이라오" 란 노래를 엿듣고,

어허허!! 그 꽃 좋다. 엌꾸..........하며

좋아 하였다는데.....,

그 뒤 안질양반의 별명이 ‘뻐꾸기’가 되었고,

어디서나 "뻐꾹, 뻐꾹" 놀림을 받았다는 일화도 있다.

 

택호 꽃노래는 농경사회 성씨 집촌마을의

아름다운 지혜의 소산물인 것 같다.

"키다리꽃댁, 키다리꽃양반"

"채송화댁", "채송화양반"

"할미꽃댁", "할미꽃양반"

그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이름인가?

혼탁한 지금 우리 사회도 이런 '꽃이름 택호'를 불렀으면 좋겠다.

 

‘채송화양반 이놈’ 이란 말이 나올까?

'개새끼 할미꽃양반' 이란 욕설이 나올 수 있을까?

 

나부터 아름다운 택호 꽃노래를 부르자.

내 집 아이들에게 꽃이름를 지어주자.

내 이웃에게 택호 꽃이름을 지어 불러주자.

 

 

 

2000年 初春, 애루(愛淚)

-필자의 兒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