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와 함께 여행을 ~ 영해 목은 탄생지, 포항 호미곳.

2020. 6. 9. 12:02카테고리 없음

<넷째 날>

아침에 보니 그 흔한 모텔, 펜션을 두고
하필 지저분하고 좁은 광전파크모텔을 선택한 것은
나의 아집과 게으른 탓 일 게다.
한번 선택하면 쉽게 변경하지 않는 나의 그 고집 말이다.
그러나 천지한식뷔폐(054-788-6322)을 찾아낸 건 잘한 짓이다.

어제 저녁식사는 천지한식뷔폐에서 한우도가니탕(1만5천원) 먹고,
오늘 아침에는 한우꼬리곰탕(1만7천원)을 먹었으니 이만하면 족하지 않은가?

 

(28-1) 울진 후포항 일출 – 전봇대에 해가 걸렸다.

 

(28-2) 울진 후포항 맛집-별4개.

 

오늘 여행계획은,
영덕 영해 괴시리(槐市里) 전통마을,
영덕 강구 대게로 점심,
포항 구만리 호미곳,
이견대, 감은사지 탑, 문무대왕 수중릉,
해변 여러 포구와 바닷가 경치를 보며
울산 정자리 신도시까지 간다.

 

동해해변 도로와 7번 국도를 번갈아 타며,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槐市里) 전통마을 호지촌(濠池村)부터 찾아간다.

 

경북민속자료 제75호로 지정되어 있는 괴시리 전통마을은,
200여년 된 고 가옥들이 30여동이나 즐비하다.
또한 이 마을에는 고려 말 목은 이색(1328~1396)의 안태고향 이다.
그래서 괴시리 마을에는 목은 이색 기념관(054-730-7701)과 사당이 있다.

 

그러고 보니?
고려 말 삼은(三隱)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
모두 경상북도 출신이네!
목은 이색은 경북 영덕군 영해면 출신이고,
포은 정몽주는 경북 영천군 임고면 출신이고
야은 길재는 경북 선산군 해평면 출신이다.

 

이분들을 삼은(三隱)으로 부르게 된 까닭은 왜인가?
삼은으로 부르게 된 특별한 이유가 기록에는 없지만,
5백년 역사 속에서 이들을 삼은으로 불러온 이유는 이러하다.

 

계룡산 동학사(東鶴寺)에 삼은각(三隱閣)이 있다.
<삼은각비문(三隱閣碑文)>이 의하면,
“조선 태조 2년 서기1,394년 '야은 길재'가

동학사 경내에서 단(壇)을 쌓고,
고려 국왕들과 '포은 정몽주'의 혼을 불러 초혼제를 지냈다.
그 뒤 조선 정종 1년 서기1,399년에 유방택(柳方澤)이 이곳을 찾아와
'목은 이색'과 '야은 길재'를 추배(追配)하여 제사를 지냈다.
그 이듬 해 공주 지주사(知州事)로 부임한 이정간(李貞幹)이
그 제단에 삼은각(三隱閣)을 창건하고 '삼은(三隱)'을 제사지냈다.”
이 사실이 전주유림(全州儒林)에 알려져 '삼은'이란 칭호가 생기게 됬고,
'목은(牧隱) 이색', '포은(圃隱) 정몽주', '야은(冶隱) 길재'를
"삼은(三隱)"으로 일컫게 되었다.

 

(28-3) 영덕군

(28-4) 영덕 영해면 괴시리 전통마을(목은 이색 안태고향).

(28-5) 목은 이색 기념관.

28-6) 목은 이색 초상화.

 

차안에서 계속 기다려준 백돌이에게 “미안하다 고맙다.” 인사하고,
7번 국도로 영덕군 바닷가로 간다.

 

영덕군 방곡면 영리에는 금계국이 만발한 길을 따라간다.
송림과 해변이 어우러진 캠핑카족들이 모이는 조용 맑은 영리해수욕장이다.

이 금계국이 언젠가 부터 토종식물을 압제해가며 전국에 퍼지고 있으니,

황금색꽃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토종식물의 수난이 오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이맘때 쯤 우리 풀밭을 하얗게 덮어버리는 망초꽃처럼 귀화식물이 될것 같다.

 

해변옛길을 따라 영덕군 강구면 금진리 <바다다 커피집> 앞에 멈춘다.
강아지 백돌이도 풀어 놓고
아메리카노 한잔을 맛있게 마신다.
커피집도 맛집-멋집 별 4개이다.
풍경도 좋다.
끝없이 펼쳐진 옥빛바다에 풍덩 빠져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곳이다
다시 오고픈 <바다다 커피집>.

 

여행자는 다시 떠나야 한다.
강구항에 도착,
비린내 풍기는 대왕대게직판장(054-733-3399) 2층으로 올라간다.
대게1마리로 점심식사(5만원)를 한다.
게살과 게딱지볶은밥으로 포식한다.
시원한 국물 대게매운탕은 남겼다.
아깝다.
혼자니까 할 수 없지.

 

(28-7) 영덕 방곡면 영리해수용장 진입로-금계국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28-8) 영덕 방곡면 영리해수욕장.

(28-9) 영덕 강구면 금진리 <바다다 커피집>

(28-10) 금진리 <바다다 커피집> 간판과 바다.

아메리카노 한잔.

(28-11) 영덕 강구 대왕대게직판장(054-733-3399).

(28-12) 영덕 강구항-이리 저리 엃혀았는 전깃줄이 여행자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강구대교를 건너 다시 동해대로(7호국도)를 탄다.

 

해변도로 호미로를 타고 호미곳으로 가다 보면 아름다운 포구와 백사장이 나온다.
동해면 흥환리 백사장은 가족 해수욕장으로 일품이란다.

구만리 호미곶에 다다른다.

그 유명한 호미곶 손조각을 본다.

 

다시 해변도로를 달려 양포, 감포를 스치고,

경주시 감포읍 대본리 이견대에 다다른다.

이견대에 앉아서 바다 한 복판에 떠 있는 신라 문무대왕 수중릉을 본다.
미세 먼진지 운문지 대왕수중릉이 아스라이 가물가물 한다.

 

이견대를 떠나 감은사지로 간다.
감은사지 금당지하 뚤린 용혈(龍穴)을 찬찬히 흩어본다.
천년 세월 인고를 격은 석탑을 몸으로 쓰다듬으며
물 한 모금을 달게 마신다.

 

문무대왕 수중릉 주차장으로 가 멀리 대왕릉을 향해 두손을 합장하고
"이제 왜구는 없어 졌으니 우리의 소원 <남북통일>을 빨리 이루게 해 주소셔!” 간구한다.
이견대 쪽을 처다보니 운무가 끼어 뿌옇게 보인다.

 

(28-13) 포항 장기 호미곶-육지를 바라보는 오른손 조각

(28-14) 포항 장기 호미곶-바다를 바라보는 왼손 조각.

(28-15) 포항 장기 신창1리 해변의 기묘한 바위와 소나무.

(28-16) 경주 문무대왕 수중릉.

대왕수중릉 일출. 

(28-17) 경주 이견대-문무대왕 수중릉을 바라보는 장소.

(28-18) 경주 감은사지 석탑.

 

다시 동해안로를 따라 울산쪽으로 기수를 돌린다.
곧 한국원자력 월성발전소 구역이라 해변길이 없다.
우회하여 양남을 지나고 해변옛길을 찾아 주행한다.
다시 31번 동해안로와 합쳐진다.

 

오롱그룹 하계휴양소를 지나 계속 해안도로로 진행한다.

 

울산신도시 신명정자의 빌딩숲을 보게 된다.
화암마을 뒤 신도시에 우람하게 올라간 <사코어호텔>을 만났다.

무인텔이라 사람이 없었다.

평점 별5개를 받고 있는 호텔이라 분명 강아지 입실이 금지되지 않을까.

마침 무인텔 자동구입(5만원)으로 401호 카드를 받았다.

얼른 백돌이를 안고 에리베이터에 올라 401호를 찾아 짐을 풀기 시작했다.

조금 후 관리인이 나타나서 강아지는 입실불가라는 것이다.

강아지는 기저귀를 찾고, 만약 문제가 생기면 모든 책임지고 즉시 퇴실하겠다.”

약속하고 다행히도 하룻밤 묵을 수 있게 되었다.

아하!! 무인텔 장점이 이것이로 구나!

역시, 목욕탕도 침대도 전망도 모두 맘에 들었다.

이 호텔은 화암마을 신도시 계발구역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화암(花岩)이란, 이 마을 명칭으로 붙은 이유는,
이곳 바위가 주상절리(柱狀節理;columnar joint)현무암질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상절리 현무암은 화산에서 분출된 용암이 물에 갑자기 냉각될 때 생긴다.

 

우리나라에서 주상절리 암석을 볼 수 있는 곳은,
철원의 한탄강 유역과 제주도의 해안가 뿐으로 알려저 있다.

그러나 울산 화암리에도 주상절리 현무암이 있다는 것은
지질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로 보인다.
이 주상절리 현무암이 울산 화암리 관광지 개발에 좋은 아이템이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신도시 개발로 현무암지대 땅을 밀어 손상 시켰는지? 모르겠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8-18) 울산 신명리해변과 고층빌딩숲-미세먼지로 뿌였다.

(28-19) 울산 화암마을 앞 바위섬, 주상절리 현무암.

(28-20) 울산 화암리 무인호텔 시코어호텔.(4박장소)

 

울산친구가 찾아와서 주전마을에서 물회저녁을 먹었다.

울산물회는 특이하게 가루얼음에 생선회, 과일, 야체, 재료를 넣어

처음에는 물없는 비빔회로 보였으나.

곧장 물회로 바뀌어 그 맛이 시원하기론 선식(仙食)이었다.

중독성이 강한 물회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