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개석(蔣介石)의 한마디~"그러니 나라를 빼앗겼지"

2021. 4. 30. 05:04카테고리 없음

 

동이족(한민족)이 부정하는 동이족(한민족)역사.

배달족(한민족)이 부정하는 배달족(한민족)역사.

한단족(한민족)이 부정하는 한단족(한민족)역사.

 

동북아시아를 지배한, 

어질고, 예절바르고, 창의력이 넘치고

또 평화를 사랑하는<동이족(東夷族;桓檀族)>을 아시나요?

 

해동성인(海東聖人)으로 추앙받는 공자(孔子)도 동이족(桓檀族) 후손이요,

주역과 역법(曆法)을 창안했다는 태호 복희씨는 물론,

농사법과 의학을 발전시켰다는 염제 신농씨와 

황제 헌원씨도 동이족(桓檀族)이다.

 

유라시아대륙을 태평성대로 이룩했다는

최고의 성군(聖君) 요(堯) 임금과 순(舜) 임금도 동이족(桓檀族)이요,

인류최초 구리투구를 써고 전쟁에 나서

보기만 해도 질겁하여 싸워 보지도 못하고 도망치게 만든 

치우천제(蚩尤天帝)도 동이족(桓檀族)이요,

갑골문자, 한문자(漢文字)를 만든이도 동이족(桓檀族)이요,

녹도문자, 가림토(고대조선 속용문자)를 만든이도 동이족(桓檀族)이요,

절개로 유명한 백이(伯夷)와 숙제(叔弟)까지도 동이족(桓檀族)이였다.

 

일본학자 고꾜야스히꼬(吾鄕淸彦)의 기록을 보면,

“사마천의《사기(史記)》25권은,

단군조선이 중원대륙을 지배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거꾸로 뒤집어 가지고 마치 지나(중원)가 단군조선을 지배한 것처럼

힘겹게 변조작업을 해 놓은 것이다.”

 

그 고고학적 자료는 근대에 와서 발굴되고 있는 

청구조선문명(홍산문화)의 유물을 보면 알수 있다.

 

내몽골과 만주지역에서 출토되고 있는  

BC.9,000년~1,500년까지 유적,

청구조선문명(홍산문화) 출토 유물은

<삼국유사>에 기록된 고대조선(환인 칸국+환웅 배달국+단군 조선국)을

충분히 복원시켜 주고 있다.

 

따라서 일재강점기와 격동기에

나철, 계연수, 오동진 등,

독립투사 선지식들이 필사 합본한

고기(桓檀古記)도 1970년대에 발견됨에 따라 

고구려 및 삼국 이전 끊긴 우리 고대역사, 

고대조선(환인 칸국+환웅 배달국+단군 조선국)과 부여를,

극명(劇明)하게 밝혀지고 있다.

 

 (그림) <광계토태왕비>에 근거해 동이족(桓檀族)이 지배했던 동북아시아 지도.

 

 

위 지도는 <광계토태왕비>에 근거한

고대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는 물론  

토번족,선비족,거란족,몽골족,흉노족,여진족,말갈족과

오츠크해(옥저해)연안의 에밴크족들까지

동이한민족(桓檀族)으로써

동일한 고대조선 말(속용문자 가림토)을 사용하고 서로 소통되었다.

 

당시 그들의 풍속인 <고시네(祭)>,<옷(한복)>,<머리(상투)>등과 같이,

동일한 생활 풍습을 가진 민족이었으며,

<온돌(구들)>,<고인돌 및 돌널무덤>, <빗살무늬토기> 등과 같이,

동일한 생활환경을 가지고 살았었다.

또한 서로 말이 통하고,

풍습이 같고 생활환경이 동일한 족속이면

<동일민족>이 아닌가요?

 

세계4대 인류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로 알려지고 있던 황하문명,

이 문명을 발생시킨 것으로 추정되는

<청구조선문명(홍산문화)>

황화문명 보다 무 1,000년 및 2,000년 앞선 문명으로서,

만리장성을 넘은 청구(靑丘)지역 만주홍산지역에서 발견되자

이에 놀란 중국공산당(중공) 당국은 동북공정(東北工程)에서

치우 환웅까지 동이족(桓檀族) 즉 한민족(韓民族)의 조상이 아니라 

한족(漢族;支那族) 조상이라고,

'왜놈의 역사왜곡'보다 더욱 극심한 '뙤놈의 역사왜곡' 진행 완성했다.

 

그러나 아무리 가랑잎으로 해를 가리는 치졸한 방식으로

저들의 역사를 왜곡하고 허위재편역사를 만든다고 해도,

뙤놈들의 추악한 욕심만 드러내고 나타날 뿐, 

고고학적 유물 출토 역사는 그대로 남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에 필자는 세계 석학들의 논문 중에서 동이족(桓檀族)이

한민족(韓民族)의 조상임을 고증한 글과 그들의 업적을 모아

여기 올림으로써 후학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는 바이다.

 

동북아 각처에서 출토되는 고대 '옥귀걸이(옥결)'는

<한민족문명>의 동질성을 증명헤 주고 있다.

 

(사진) 신라 경주 출토 금귀걸이는,

- 청구조선문명(홍산문화) 훙륭와, 사해 출토 옥귀걸이(옥결)와 

- 강원도 고성 출토 옥귀걸이(옥결)  "동일한 문화권"임을 보여준다.

 

(1) 서량지(徐亮之) 교수의 큰절. 

한글재단 이사장인 한갑수(韓甲洙)선생이 미국 공군지휘참모대학에 입교했을 때,

같은 입학생인 대만학자 서량지(徐亮之) 교수가 한갑수 박사를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귀국 한민족은 우리 중국보다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진 위대한 민족으로서,

문자를 창제한 민족인데,

우리 중국인이 한민족의 역사를 기록한 "포박자(抱朴子)"를 감추고

중국역사로 조작하는 큰 잘못을 저질렀으므로

본인이 학자적 양심으로 사죄하는 뜻으로 절을 하렵니다.

받아주십시오."

 

그리고 한국식으로 넙죽 큰 절을 올렸다 한다.

 

서량지 교수는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1943년10월초판)에서 이렇게 썼다.

“4천여 년 전 한족(漢族)이 중국 땅에 들어오기 전에,

중원(中原)의 북부 및 남부를 이미 묘족(苗族;東夷族)이 점령하여 경영하고 있었다.

한족(漢族;支那族)이 중원에 들어온 뒤에 점점 서로 더불어 접촉하였다.”

 

그는 또 이렇게 썼다.

"은(殷)과 주(周) 이전과,

은나라 주나라 때에도

동이(東夷)의 활동무대가 실로

오늘날의 발해 연안과 하북, 하남, 산동, 강소, 안휘, 호북 지방,

요동반도 및 조선반도 등 광대한 지역을 모두 포괄하였는데

<산동반도>가 그 중심지였다."

 

서량지 교수는 또 이렇게 썼다.

“중국의 책력법(冊曆法;달력)은 동이(東夷)에서 시작되었다.

책력을 만든 사람은 희화자(羲和子)이다.

그의 혈통은 은(殷)나라, 상(商)나라의 동이족(東夷族) 조상이다.

동이가 달력을 만든 사실은 실로 의문의 여지가 없다.”

“역법은 사실 동이가 창시자이며,

소호(小昊) 이전에 이미 발명되었다.”

-曆法實倉始於東夷 而且小 以前便已發明.

 

“세석기(細石器) 문화를 지닌 부족이 최초로 거주한 곳은,

지금의 시베리아 바이칼호수(天海) 근처이다.

곧 중국의 전설 가운데 등장하는 염제 신농씨의 본래 종족이 있던 곳이다.”

“동방 인종의 오행(五行) 관념은 원래 동북아(동이족)에서 창시된 것을 계승한 것이다.”

(東方人種之五行觀念 原係創始于東北亞洲).―《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

 

 

(2) 장개석(蔣介石) 총통의 한마디 말.

중화민국의 초대총통 장개석(1887-1995)이

이시형 상해 임시정부 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나의 고향도 옛날 백제(산동지방;대륙백제) 땅이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의 선조는 대륙의 주인이었는데 

당신은 그것도 모르고 있었소?

그러니 나라를 빼앗겼지."

이시형은 속이 상했다.

 

<사진> 왼쪽이 장개석, 가운데가 그의 부인 송미령, 오른쪽은 미국인?

장계석은 공산당세력 모택동에게 대만으로 쪽겨갔다.

 

 

(3) 임어당(林語堂)의 대화.

지나(China)의 석학이요 저명한 문학평론가인 임어당(1895-1976)을 만난

대한민국 초대 문교부장관 안호상(1902-1999)선생과 이런 말이 오갔다 한다.

*중국이 자랑하는 20세기 최대 학자 임어당.

*대한민국 초대 문교부장관 안호상 박사. 

 

(안호상) "중국이 한자를 만들어서 한자를 사용하는 우리는

한글전용에 문제가 많습니다."

그러자? 임어당이 놀라 정색을 하고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임어당)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한자는 당신네들 동이족 조상이 만든 문자를 우리가 빌려 쓰는 것인데

그것도 모르고 있었습니까?"

 

무안을 당한 안호상은 이후 평생을 민족사관에 매진했으나

거대한 환단고기(桓檀古紀)내용의 고조선(칸국+배달국+조선국) 역사를

복원하지는 않았다.

 

 

<미안합니다><고맙습니다><사랑합니다> 

松隱, 劉秀(鍾).    삼가 拜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