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조선 건국의궤>산동성 무씨사당 석실 그림.

2025. 1. 1. 06:47카테고리 없음

 

 

서기 1907년 프랑스 학자 '에두아르 샤반느' 씨는 

지나(China)를 여행하며,

고대 유적과 유물 사진을 찍고 탁본을 하였다.

 

그는 그 자료를 가지고

8<북중국 고고학 조사>의 책을 발표하였다.

 

그 속에 산동성 가상현 무씨사당 화상석에 관해 기술한 내용이 있어

무씨사당 화상석이 새상에 알려졌.

 

그러나 이 화상석에 대한 설명은

청 나라 사람 풍(馮)씨 형제가 저술한 <금석색(金石索)>의

석색편(石索編)에 기술되어 있던 견해 그대로 기술했었다.

 

(馮)씨 형제의 화상석에 대한 해석은

지나(China) 고전에 나오는 인물과 설화 내용의 동물들을 인용하였고,

비교적 상세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었으나

일부 그림에 대하여는 그 설명의 비약이 심하고,

더욱이 후 석실의 제3석에 대한 설명에서는

그가 말 하기로

"대체로 후 석실에 있는 그림은 괴이한 것을 그린 것이 많은데,

이 석실 그림 중에서 제3석이 제일 이상한 것들이 많다.

더욱이 제3층의 소재는 <산해경(山海經)>이나 <영광전부 (靈光殿賦)>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괴이한 것들과 마찬가지로 그 뜻을 알기 어렵고,

알 수 없는 것들이 많고 화상 자체에 설명이 적혀 있지 않아서

해석할 수 없어 유감스럽다" 라고 표현하며

옳바른 설명을 하지 못 하였다. 

 

<단군신화(檀君神話)>를 모르는 (馮)씨 형제는 당연한 일이였다.

 

화상석 그림 전체가 <배달민족>의 전설를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지나인들은 알 길이 없었던 것이다.  

 

무씨사당의 화상석을 처음으로 <단군고사>에 적용하여

화상석의 80~90%에 달하는 부분을 명쾌히 설명 한,

 <단군신화의 신연구>의 저자 김재원 박사는 

학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그 역시 일부 그림의 설명에 대하여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눈에 띄었다.

 

당시는 고대사를 증명 할

고고학적 유적,유물이 부족한 입장에서는

아쉬운 설명을 할 수 밖에 없을 뿐

달리 길이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는 김재원 박사의 해석을 주로하고

일부 내용은 고대서적들과 <단군고사>을 참고하여 설명해 보겠다.

 

(사진) 20세기 초 방치된 무씨사당(武氏祠) ‘화상석(畫像石)’ 모습,

 

 

 무씨사당 후 석실 제2석 그림.

 

(사진) 신동성 가상현 무씨사당 후 석실 제2석 그림(고대조선 건국의궤)

(내용) 이 그림은 기원전 7,000~8,000년경 부터

환인께서 환국(칸국)을 경영하시다

기원전 4,000~5,000년 경에 환웅천제에게 천부인 3게를 주시고

'삼위산'이 있는 땅으로 내려가 <배달국>을 건국하시는 <배달국 건국의궤>.

 

위의 그림(고대조선 건국의궤)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보면 좋겠다.

구름 위에서 날개를 가지고 있는 천상 무리들과,

날개없는 지상 무리들을 따로 구분해 보는 것이다.

 

(1) 왼쪽 위  오른쪽 중간에 있는 말이 끄는 두 마차

한 마차의 진행이 계속되는 것으로

세월이 흐르는 싱태를 표현한 방법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환인 천제께서 지상으로 오랜시간 내려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환인이 다스리는 환국(칸국)시대 세월의 연속성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 오랜시간이 흐르고 오른쪽 위에 있는 두 주인공 중

한 인물의 왼쪽에 있는 두 천사는

3개의 보물(천부인)을 주인공에게 주려고 하고 있다.

양 옆의 관을 쓴(벼슬아치)사람들이 경배를 올리는 형상이다.

이 장면은 환인께서 환웅천제에게  천부인을 내리는 것으로 해석 할 수 있다.

 

(3) 날게 달린 천마 마차를 타고 계속 내려와 땅위에 도달하고,

3필의 천마 마차에서 내려

두 무사의 호위를 받으며 삼위산으로 안내받아 삼위산에 오른다.

그 곳에는 두 호위 무사가 타고온 말 두필과

환웅천제가 타고 온 3필 천마와 마차가 방치되어 있다.

 

(4) 삼위산 3봉우리는 3부족을 뜻하는데

그 3부족은 맑족(봉황새족),맥족(곰족),예족(범족)이다. 

삼위산에 오른(3부족 위에 오른) 환웅천제

황궁에서 양산을 들고 마중나온 관리들과 백성들을 향하여 

홍익인간 새상을 반포한다.


지나(China)의 학자들은

화면 상단의 두 주인공을 지나(China) 의 전설 속에 나오는

동왕공, 서왕모라고 해석히였다.

 

그러나 한민족의 고대역사서 <심국유사> 내용의

단군신화에서 환인과 환웅천제를 대입하면

딱 맞은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버지(환인)은 아들(환웅)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伯)을 내려다 보매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 한지라

이에 천부인 3개를 주어,

가서 세상사람을 다스리게 하였다." 라는 내용과 잘 부합된다.

다음 제3석의 내용과도 연결 해석이 잘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같이 제2석의 그림은

환웅 천제께서 배달신시시대를 열기 이전,

환인 안파견에서부터

마지막 환인 지위리까지

총 3,301년간의 칸국시대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면서

환웅 천제의 배달신시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암시하는 내용이다.  

 

 

■ 무씨사당 후석실 제3석 제1층 그림. 

(내용) 이 그림은  기원전 4,000~5,000년경

환웅천제께서 3마리 용마가 끄는 수래를 타시고

용마를 탄 4명의 호위병에게 호위를 받으시며 아사달을 시찰하시는 그림

 

무씨사당 후석실 제3석 1층 그림은 왼쪽에서 시작되는데,

한 신인(神人) 환웅(桓雄)천제깨서 3마리 용마가 끄는 마차 위에서

용마을 탄 4명의 무사들 호위를 받으며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 오시니 온 천지에 서기가 서리고 있었다

 

수많은 백성들과 관리들이 나와 무릎을 꿇고 경배 환영한다.

이는 환웅천제께서 아사달을 시찰하시는 그림으로 해석한다. 

 

■ 무씨사당 후석실 제3석 제2층 그림.

(내용) 환웅천제께서 구름 마차를 타시고 전국을 순행하시며,

뿔 소라 나팔을 불어 바람을 일어켜 구름을 모우는 풍백(風伯),

번개 벼락을 일어켜 비가 오도록 조성하는 뇌공(雷公), 

비가 풍족히 내리도록 한 우사(雨師)의 그이다.

@당시 나락(쌀)농사의 풍년을 위한 환웅천제의 바램(염원)으로 보인다.

나락(쌀)은 청원군 소로리에서 기원전 10,550년 재배가 시작되었음이 나락화석으로 확인. 

 

그 다음은 두마리 용이 등을 구부리고 있는대,

비온 뒤 무지개로 보인다.

그 아래에는 누구든지 죄를 지어면 채찍을 맞거나

목이 끈겨 죽을 수도 있으니 홍익인간 사회를 펼칠 수 있도록

선하고 착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경고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그림은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곡(穀), 명(命), 병(病), 형(刑), 선악(善惡)을 다스린다."표현이다.

 

즉 풍백, 우사, 운사가

오곡의 풍성함과 선악을 가려서 형을 주고

또는 병을 주어 명을 결정하는 것 등의

인간 360여일의 제반사를 주장한다는 내용이다. 
 

 

■ 무씨사당 후 석실 제3석 제3층 그림

(내용) 이 그림은 기원전 2,333년 단군조선 건국의궤의 한 부분으로서

오른쪽 인물은 범의 형상(범 토템가진 범족)이고

왼쪽은 곰의 형상(곰 토템가진 곰족)맥족이다. 

이는 단군조선 건국의 곰족과 범족의 의인화한 그림이다.

 

아래의 확대 그림에서,

곰족(맥족) 자오지(치우) 천제께서 다섯무기를 창재하시고 무신(武神)이 된 내용으로 보이며,

범족(예족)이 입으로 아이(단군)을 낳는 형상인데?

단군은 맥족 공주<웅녀>의 몸에서 태어난 것이 아닌가?

 

 

 제3층에는 고대조선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신시시대 1,565년간의 역대 환웅천제들의 치세의 진행과

마지막에 단군의 출생을 상징적으로 표현고 있다.

 

지나 혹은 외국의 학자들이

"이상한 사람들과 기괴한 짐승의 이름을 알 수 없다."라고 한 만큼

이 3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삼국유사의 기록 

배달민족 역사기록 환단고기 신단민서 같은

역대 고서의에 기록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가능하다. 

이 3층의 모든 사람물과 짐승은

구름 위에 있는 신화도 아니고 날개가 있는 천사도 아니므로

이 모든 것은 지상에서 일어난 일이니,

완전히 역사시대 발생한 실사(實史)인 것이다. 

그림의 중심은

위쪽 곰과 범 두 의인화 된 동물로서

모든 사람물과 짐승들이 그 곳으로 향하고 있는데,

이 역시 역사의 연속성을 의미한다.

오른쪽의 두 의인화 된 짐승 중

오른쪽 인물은 범의 형상(범 토템가진 범족)예족이고

왼쪽은 곰의 형상(곰 토템가진 곰족)맥족이다. 

이는 단군조선 건국의 곰족과 범족의 의인화 표현이다.

곰(맥족)의 형상을 한 인물은

머리와 손발에 병장기를 들고 칼춤을 추고 있으나

 

범(예족)의 형상을 한 인물은

 어린아기를 입으로 낳는 모습을 하고 있다. 

지나학자들이 어떻게 이 그림의 뜻을 설명하겠는가?

이 범의 형상을 하고 있는 인물이

아이를 먹는 모습으로 설명하는 문헌이 많이 있으나

상 나라 혹은 주 나라 초기의 청동기 유물들에서 나타난

수 종류의 문양들로 미루어보아

이 형상은 아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 아이를 낳는 형상이다.

 

이러한 사실은 조이족(韓族) 역사에서 종종 볼 수 있다. 

곰(맥족)의 형상을 한 인물

배달국 제14대 자오지 환웅천제 처름 묘사하고 있다.

지나의 여러 역서에서는 최초로 철기문화를 열고

다섯 가지의 병장기(활,칼,창,도끼,비수)를 만들어

그 위엄을 천하에 떨친 곰족 치우(蚩尤) 모양의 표현으로 보인다. 

 

배달신시 시대의 18대에 한웅 치세기간 중

특히 14대 치우천제의 위력이 어느 정도 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배달신시시대를 기록하는 그림에서 후반부에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치우천제의 형상이

용맹하게 표현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삼국유사>에서 사람의 몸을 얻은 것은 곰족이고

단군 왕검 역시 곰족의 공주 웅녀(곰녀,김녀)께서 출생한 것이라고 되어 있으나

이 화상석에서 범(범족)으로부터 아기가 태어났으니

 범족(예족) 공주의 몸에서 단군왕검이 태어난 것은 아닌가?

모를 일이다.

 

이 제3층의 그림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태백일사> 신시본기에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이후 제도의 정비와 치우 천제가 출현하여

혼란한 세상을 정돈할 필요성과

다음 세상을 열어갈 단군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시기가  기원전(BC).3,500년경이 된다.

 



■ 무씨사당 
후석실 제3석 제4층  

(내용) 이 그림은 기원전 2,333년 단군 왕검께서 조선건국 의궤의 한 부분으로써,

단군 왕검께서 등장하시면서 야생동물을 가축으로 키우고 땅을 개간하여 경작지로 만들고

새상이 더 풍성해지는 농경문화의 시작을 알리는 림이다. 

 이 그림은 기원전(BC) 2,333년 단군 왕검께서 말을 타고 등장하신다.

단군조선 시대는 노루, 맷돼지를 맘끝 사냥해서 매고,

강아지도 따라가며 멍멍짖고,

나무를 뿌리째 뽑아 밭을 일구고 곡식을 심고,

소와 말, 돼지, 개를 가축화 하여 풍선하게 기르는,

단군조선 시대의 평화로운 생활상의 표현으로 보인다.

 

여기 신령스러운 한 인물 단군의 탄생은

인간사회의 모든 중생을 지도하여 생업을 가르킨,

우리의 단군, 신인(神人) 왕검(王儉)시대가 온 것이다.

 

고기 <단군세기>에서.. 
개천 1,565년10월03일에 이르러 신인 왕검이

오가의 우두머리로서 800인의 무리를 이끌고 와서

단목(檀木;소사나무)의 터에 자리 잡았다.

 

무리들과 더불어 삼신님께 제사를 올렸는데

지극한 신의 덕과 성인의 어진 마음을 갖추었더라.

마침내 능히 하늘의 뜻을 받들어 이어 그 다스림이 높고 크고 또 맹렬하였으니

구한(九韓)의 백성들이 모두 마음으로 따르며

천제의 화신이라 하고 그를 임금으로 삼아 단군왕검이라 하였다.

신시의 옛 규칙을 도로 찾고 도읍을 아사달에 정하여 나라를 세워 <조선>이라 이름했다. 
....... 

 

이에 팽우에게 명하여 땅을 개척하도록 하였고,

성조에게는 궁실을 짓게 하였으며,

고시(고시네)에게는 농사를 장려하도록 맡기셨고,

신지에게 명하여 글자를 만들 게 하였으며,

기성에게는 의약을 베풀 게 하고,

나을에게는 호적을 관리하도록 하였으며,

희에게는 점치는 일을 관장케 하고,

우에겐 군대를 관장하게 하였다.

비서갑의 하백녀를 거두어 아내로 삼고

누에치기를 다스리게 하니

순방의 다스림이 온 세상에 두루 미쳐 태평치세를 이루었다. 

 

정사, 단군왕검 治世 50년(BC. 2,284),

홍수가 크게 나서 백성들이 쉴 수가 없었다.

임금께서는 풍백인 팽우에게 명하여 물을 다스리게 하고

높은 산과 큰 강을 평정하여 백성들을 편하게 하였으니

우수주에 그 비석이 있다...]  

운운(汞山)이 바로 그것이다.  

 

이로부터 단군조선 2096년의 역사가 이어진다. 

 

(사진) 기원전(BC) 2,500년경 단군조선 건국 기념 청동기 <놋허리띠(靑銅腰帶)>

- 만주 나만기 유적 출토.

(내용) 봉황새(맑족)의 발 아래 곰(맥족),범(예족),이리(훈족) 및 여러 부족들이

모여서 <단군조선> 건국한 핵심 부족들을 표현한 그림이다

 

위 사진은 단군조선 건국기념 <놋허리띠(靑銅腰帶)> ,

봉황토템 조이족(맑족;말조선)이

동이 맥족(곰족;번조선),

만주 예족(범족;진조선),

몽골 훈족(이리족;사하조선)들을 흡수 통합으로써,

<단군조선> 건국을 기념하는

청동기 유물이 만주 나만기유적에서 출토되었다.

 

또한, 아사달 문양을 그린  한반도 전통토기 '뾰쪽밑토기 솥'

산동반도에서 출토되었다.

 

(사진) 기원전(BC) 3,000∼2,400년  단군조선 건국 기념 토기 솥.

- 산동반도에서 출토.

 

 

https://youtu.be/OmRGXggU6FI?si=HB8GkyyejS-N4y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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