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5. 13. 08:39ㆍ역사(한단고기)
"유이태(劉以(爾)泰)"는 실재(實在)한 인물로서,
조선 19대 숙종(재위 1661~1720)때의 명의로 <마진편(麻疹篇)> 1권을 집필하였다.
"허준(許浚)" 역시 실재(實在)한 인물로서,
조선 14대 선조(재위 1567∼1608)때 명의로서 <동의보감(東醫寶鑑)>을 집필하였다.
극작가 이은성(李恩成)씨가 <동의보감 장편소설>을 집필할 때,
산음(山陰;산청)의 명의 "유이태(劉以(爾)泰)"를 "허준(許浚)"의 스승으로 설정하고,
유이태(劉以泰)를
류의태(柳義泰)로 가공하여
경상도 산음(산청)에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처럼 만들어 놓았다.
가공의 인물 류의태(柳義泰)를 지금 산청에서는
류의태 동상도 만들고,
류의태 묘지도 만들고,
류의태 우물도 만들어,
류의태가 산청에 실제 산 사람처럼,
역사를 왜곡하는데 혈세를 솟아붙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하다.
역사속의 실제 "허준"은 "류의태"와는 상관없이,
류희춘(柳希春,1513년(중종8)~1577년(선조10)의 소개로
당시 어의(御醫) '양애수'의 문하가 되어 내의원에 들어가게 된다.

<소설 동의보감> 내용에서
"허준"을 영웅화시키기 위해
<약>과 <침> 모두에 통달한 것 처럼 묘사되고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선조 당시 침의(針醫)로서 "허임(許任)", "남영"이 있었고,
"허준"은 약의(藥醫)였을 뿐이다.
<선조실록>에서 "허준"이 상(선조)에게 아뢰기를,
"소신은 <침>을 놓지 못합니다 만..... "허임"이 말하기를 .......등등" 과,
<선조실록>에서 상(선조)에게 <침> 놓는 장면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남영"이 혈(穴)을 정하고 "허임"이 침을 들었다."
이 사실을 볼 때,
침의(針醫;침구사)와 약의(藥醫;한의사)는 그 발생 시초부터 달랐다.
"허준" 당시까지만 해도 '침의'와 '약의'는 서로 다른 업무분장의 의원으로서
서로 다른 의술을 배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질병치료의 기초이론도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침의(鍼醫)>의 바탕이론은 경락학설이 주이론이고,
<약의(藥醫>)의 바탕이론은 장상학설이 주이론인 것이다.
<약의(藥醫)>인 지금의 <한의사>는
체질감별과 오장육부의 성쇠, 허실을 진맥하여,
약물로서 '냇과질병'을 주로 치료하는 것이 본 업무였다.
반면에 <침의(鍼醫)>는 경락과 경혈을 진맥하여
침술과 뜸술로서 '욋과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본업이였다.
<선조실록>, <광해군일기>가 올바른 역사인데 반하여,
<소설동의보감>, <TV동의보감>은,
실재 역사를 심각하게 왜곡시킨
문화적 오류를 범한 창작물 소설이였음을 우리들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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