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10. 3. 20:35ㆍ茶론(차와 다완)
차(茶)의 원산지는 인도라고 한다.
우리의 선조들이 어느때 부터 차(茶)를 음다(飮茶)하기 시작한 것일까?
김수로王이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許黃玉)을 왕후로 맞아 들일때
차(茶)도 함께 인도에서 들어 왔다는 설이 있다.
이능화(李能和,1869-1943)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統史)”에서
"김해(金海)의 백월산(白月山)에 죽로다(竹露茶)가 있는데,
세전(世傳)에 의하면
수로왕비 허씨가 인도에서 차 종자를 지니고 와 심은 것이라 한다." 라고 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 제2에서,
신라 경덕왕(景德王) 19년 (서기760년) 4월 초하룻날,
"해가 둘이 나란히 나타나서 ---(중략),
월명사(月明師)를 뽑아 도솔가를 지어 부르게 하니,
괴변이 사라 졌다.
왕이 가상히 여겨 품다(品茶) 한 봉과 수정염주 108개를 하사했다."
또 경덕왕 24년 (서기765년),
"중 한 사람이 있었는데
승복을 입고 벗나무 다래끼(櫻筒)을 매고 남쪽에서 오고 있었다.
왕이 보고 기뻐하여 루(樓) 위로 영접했다.
다래끼 속을 보니 차구(茶具)가 들어 있었다.
왕이 물었다.
“그대는 누구요?”
“소승은 충담(忠談)이라고 합니다.”
“어디서 오는 길 이오?”
“소승은 3월3일(삼짓날)과 9월9일(구구절)에는 차(茶)를 다려서,
남산 삼화령(三花嶺)의 미륵세존(彌勒世尊)께 헌다(獻茶)하는데,
지금도 차를 드리고 돌아 오는 길 입니다.”
“나에게도 그 차(茶) 한잔 나누어 주시 겠소?”
스님이 이내 차(茶)를 달여 드리니,
차(茶) 맛이 이상하리 좋았으며
찻사발 속에서 이상한 향내(香氣)가 풍겼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제10, 신라 본기 제10,
신라 제42대 흥덕왕(興德王) 3년(서기828년) 12월 ,
"당(唐)에서 돌아오는 사신(使臣) 대렴(金大廉)이
차(茶)의 종자를 가져 오매,
왕은 그것을 지리산(地理山,智異山)에 심게 하였다.
차(茶)는 선덕왕(善德王)때 부터 마셨지만,
이때에 이르러 왕성(盛) 하였다."
사기(史記)에서는 차(茶)가,
신라 제27대 선덕여왕(善德女王 632-647)때 부터 있었으나,
흥덕왕(興德王)때인 서기 828년 이후부터
비로소 차(茶)나무를 재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진) 삼남지방 "보성"의 차밭.
차(茶)를 음다(飮茶) 하기 시작한 신라 선덕여왕(632-647)때는
많은 학자,승려,왕족들이
당시 선진문화인 당 나라로 유학을 갔고,
당 나라와의 교류가 가장 활발한 시기로서,
자장율사(慈藏律師)는
"신라의 제도를 당 나라와 같게 바꾸었다." 삼국유사는 말하고 있다.
이 시기에 차도 자연스럽게 수입되고 마셨을 것이다.
신라인들은 7세기 경부터,
당 나라에서 수입한 차를
왕궁, 귀족, 승려 등 상류사회에서 음다한 것으로 보인다.
충담사(忠談師)가 경덕왕(景德王)에게 다려드린 차도
향이 강한 “향다(香茶)”로 보이며,
신라 차인들은 이때에 벌서 “향다(香茶)”를 마시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9세기 경 김대렴(金大廉)이 차 종자를 가져와서
차 나무를 재배한 후로는
더 많은 신라인들이 차를 마시게 되었을 것이고,
신라인 들이 마신 차 이름 중에는 “한명다”,“연고다”, “병다”가 있었다.
진감국사비문(眞鑑國師碑文)에 있는
“한명다(漢茗茶)”는 당 나라에서 수입된 “작설다(雀舌茶)”인 듯 하며,
“연고다”는 가루다(抹茶)인 듯 하다.
경주 반월성 신라 동궁지 안압지(雁鴨池) 청소작업시 출토된
“정(貞), 언(言), 영(榮)” 명문(銘文) 사이에 “차(茶)”자 쓴 그릇이
한민족 최고(最古)의 신라다완(新羅茶椀) 이라면,
이것은 한국정신문화사의 귀중한 문화유산임에 틀림없다.
(사진) 월성 안압지 출토, “정(貞), 언(言), 영(榮)” 명문(銘文)의
신라 최고다완(新羅 最古茶椀).
차문화가 고려시대에 와서
금화오잔(金花烏盞)과 비색소구(翡色小甌;靑磁盞)와 함께 발전하여,
서기1292년 고려 충열왕(忠烈王) 16년 8월에는
"용뇌향(龍腦香)와 사향(麝香)을 섞어 만든
향(香)이 뛰어난 향다(香茶)를 중원에 보냈다."는 기록을 볼 때,
고려에서는 차를 중원으로 역수출 할 정도까지 차문화가 번성 하였던 것이다.
조선시대에 와서도 차문화는 계속 계승되어 차생산 전문농장까지 등장하고,
차의 등급도 있었는데,
상품다는 “작설다(雀舌茶)”,
중품다는 “차(茶)”로 불렀다.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의 기록에서,
다소(茶所;茶生産地)가 전국에 33개소가 있었는데,
그 장소를 보면,
전라도에 총25새소 중
“작설차(雀舌茶)”등급 생산 차소13개소는
古阜,羅州,靈岩,靈光,康津,茂長(下長부근),咸平,南平,務安,高敞,興德,長城,求禮이고,
“차(茶)”등급 생산차소 12개소는
沃溝,井邑,光陽,長興,潭陽,順天,茂珍(光州),寶城,樂安(南內부근),高興,同福(牛山부근),珍原(東雲부근)이고,
경상도 “작설다(雀舌茶)”등급 차소8개소는
蔚山,密陽,晋州,咸陽,固城,河東,山陰(山淸),鎭海 등 이라고 한다.
이 외에도 여러 곳에서 차나무가 재배된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병란(兵亂)에 시달리던 역사의 운명과,
불교문화의 쇠퇴와 더불어 선다사상(禪茶思想)의 위축으로,
차문화는 점차 사라지고,
차생산지는 황폐화되고 차나무는 야생화되어 산야에서 잡목화 되어 갔던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초의선사(草衣禪師;張意絢;1786-1866)의
동다송(東茶頌)과 차신전(茶神傳)이 있고,
다산(茶山) 정약용의 동다기(東茶記)가 있어
한국차문화의 맥을 이어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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